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굿닥터, 말아톤,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인데 작품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에 대한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묘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비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에서는 그 사람들의 호흡, 말하는 습관, 눈 깜빡임까지 제대로 묘사해야지만 논란이 생기지 않고, 좋은 평을 받을 수가 있어서 직접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몇 배는 더 힘든 면이 있다. 단순한 대사 한 줄에 인물의 감정, 말투, 호흡만 담아서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기에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설정이 들어간다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할지라도 어렵다는 표현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자폐 스펙트럼인데 변호사...?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설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인 것 같다. 흔히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은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수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은 맞을 수도 있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서 계속해서 남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 중에 한 분야에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있지만 변호사와 같은 직업군에서는 힘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1화에서도 나오듯이 담당 변호사가 우영우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주머니가 보이는 반응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변호사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고, 겉으로 보기에도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게 확연히 보이는 데 곧바로 믿을 사람은 없을 거다.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가 우영우를 소개하면서 서울대 수석이라고 말했음에도 반응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한 거다. 나라도 내 사건을 담당해줄 변호사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 배정이 된다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나 부족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
감정을 외우는 방법
내 기억이 맞다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에서 오정세 배우님이 연기하셨던 문상태라는 인물 또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감정별로 사람의 얼굴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우영우라는 인물의 집에도 똑같이 사람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얼굴 사진들이 방안에 마련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표정 별로 바뀌는 미세한 모습의 차이를 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박은빈...?
박은빈 배우님을 처음 접한 드라마는 청춘시대였다. 거기서도 정말 독특한 캐릭터를 찰지게 연기했다고 느꼈는데, 그 이후로도 작품마다 개성 있는 인물을 연기해오신 걸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특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전공자처럼 보이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왜 이렇게 성공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인터뷰를 보면 내가 굉장히 대충대충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고, 반성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로 변호사이며,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침엔 아버지의 가게에서 우영우 김밥을 먹으며 출근을 하고 어딜 가든 김밥을 주로 먹는다. 고래를 무지무지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래 얘기를 자주 해준다. 자페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배제한다면 우영우라는 인물은 충분히 훌륭한 변호사다. 그렇기에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도 우영우의 설명을 듣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피고인에게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를…?!
3화에서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는 우영우에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피고인의 변호를 맡을 것을 권유한다.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를 변호하기에는 같은 장애를 보유한 우영우가 맡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서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장애가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것보다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변호사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우영우가 일반적인 변호사보다는 더 접근하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에게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동일하지 않고 각각 다름을 알려준다. 이처럼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편견에 치우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장애를 가진 자녀와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대화가 어려운 자녀를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내가 키우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며, 아버지인 나와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힘들 것 같다. 이처럼 우광호는 3화에서 우영우에게 같이 살아간다는 것보다는 외롭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나와 기쁨, 슬픔 등을 공유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광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키워 우영우가 바르게 자라날 수 있었던 건 모두 우광호의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 사시 만점이지만 졸업 후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단지 자폐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 우영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부정과 비리일지라도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잡고 보는 게 맞겠지만, 반대로 우영우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를 위해 노력했지만 상처가 돼버리는 건 조금 슬펐던 것 같다.
3화에서는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이 피고인으로 등장한다.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일지라도 서로 다르다는 우영우의 말은 두 인물을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었고, 그럼에도 사회에서는 같은 장애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게 되는 우영우의 모습이 많이 안쓰러웠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도 뛰어난 반면 3화에서 등장하는 김정훈이란 인물은 정신연령이 6~7살 정도에 머무르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내 아이는 기껏해야 6~7살에 머무는데, 남의 아이는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변호사로 일을 하는 우영우를 보는 김정훈의 부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죽은 의대생 형과 형을 죽인 걸로 오해받는 자폐 동생
정말로 의대생인 형이 죽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동생이 산 게 국가적 손실인 걸까..?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옳다고 볼 수는 없어서 쉽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세상 편견 없는 사람 권민우...?(Feat. 권모술수, 권발놈...)
처음에는 그저 편견 없이 똑같이 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5화에서 우영우에 대한 언급을 하는 장면을 보니 정이 확 떨어지는 캐릭터로 변해버렸다. 우영우를 배려의 대상보다는 경쟁의 대상으로 대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보면 지극히 동등하게 대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밑에는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나와는 다르게 핸디캡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깔려 있고,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우영우를 자신이 챙긴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민우의 대사들을 보다 보면 차별이 없이 대한다는 게 아닌 상대를 아래로 보고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6화에서는 이준호와 최수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우영우에게 “우변은 그런 거 모르나?”라고 하는데, 이 말은 우영우가 자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감정이나 경험들에 대해서 무지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권민우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최수연과 같았다면 세상은 힘들기보다는 살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대부분은 권민우와 같이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자신과 달리 대우받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그런 모습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권민우는 그런 마음가짐이 심한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보기 싫으면서도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할 수 있다면 저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쓰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가
5화에서 금강의 사장인 오진종은 가처분 신청이 나자 우영우에게만 편지를 보내는 데 그 안에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냐는 물음이 있었다. 무릇 모든 직업에는 자신의 직업에 맞는 소명과 윤리강령이 있기 마련이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익을 위하고 변호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옳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재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직업에 맞는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본다. 그렇기에 저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는 옳더라도 변호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부분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금강의 사장인 오진종도 우영우가 마음이 약해 보여서 우영우에게만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오히려 금강의 사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변호사에게 호소를 하는 것보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증거를 더 빨리 찾으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고, 그중 마음이 약해 보이는 우영우에게만 편지를 쓴 것은 아주 못된 심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사건을 맡게 되면서 자신이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를 알아간다.
정말로 공부가 중요한 걸까?
9화에서는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나라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다. 물론, 공부를 통해서 좋은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을 기회는 공부 외에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직종이 등장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어가면서 이런 공부에 대한 깊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그 나이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걱정 없이 친구와 놀 수 있는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순간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거리를 재야만 하는데 그전에라도 실컷 놀아야 하지 않나 싶다. 9화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안타깝다는 느낌만 주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기에 방구뽕의 사상과 그걸 변호하는 우영우의 대사가 더 심금을 울리지 않았나 싶다.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음...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사랑이다. 10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은 포장만 사랑이라고 했을 뿐이지 다른 흑심이 있는 경우가 거의 100%라고 봐도 된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성폭행보다 처벌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퇴계 이황 선생님밖에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와 같은 이유로 서로 사랑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랑이 아닌 경우가 많다.
빛.... 정명석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동의할 부분은 바로 정명석에 대한 부분이다. 다른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이 드라마 내에서 최고로 멋지고 아름다운 인물이다. 그저 빛이다. 저런 사람이 많은 사회라면 힘들기보다는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불거진 페미니즘 논란
아무래도 민감한 주제인만큼 요즘에는 모든 일에 서로 대립하게 되는 것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또한 초반에는 탈없이 지나가나 싶었지만, 회차가 진행되면서 여러 대립하게 되는 요소들을 사람들이 찾아냈고 그 결과 페미니즘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성과 여성의 결혼, 실제 주소에는 없는 한남 74, 한바다라는 이름이 레즈비언 여성운동단체 회장의 이름이었다는 등이 문제가 되었고, 드라마는 잘 마무리되었어도 계속해서 다툼은 이어질 것만 같다. 솔직하게 이런 부분은 시대가 변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 중에 하나지만 굳이 이런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작품에까지 문제가 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을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요즘같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트집을 잡게 되는 시기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게 맞기 때문에 저런 부분들은 미리 수정을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재밌게 본 작품이었지만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점이 아쉬웠던 것 같다.
이때까지는 몰랐겠지.... 고민이 키스할 때 숨 쉬는 법일 줄은...
무섭다.... 가히 멀티밤의 침투력....
마무리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재미와 감동 모두를 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그저 그렇게 지나가거나 웅장하기만 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색감이 아름다운 그런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시청률만 생각해서는 나오기 힘든 그런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 탄생된 그런 색감은 생각보다 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 행동, 손짓 하나까지 세세하게 설정되어있었고, 그 과정에서 보는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반성을 할 수 있는 요소들도 충분하게 넣은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을 음악뿐만이 아닌 카메라의 구도를 통해 보여주었는데 그 부분에서 조금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명대사
내 이름은 '꽃부리 영英'에 '복 우祐'. 꽃처럼 예쁜 복덩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영리할 영伶'에 '어리석을 우愚'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책을 전부 기억하지만, 회전문도 못 지나가는 우영우. 영리하고, 어리석은, 우영우.